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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의 한 문장 — "판사는 심판과 같다"

2005년 9월 12일, 미국 상원 법사위원회 인준 청문회. 연방대법원장 후보자였던 존 로버츠는 모두발언에서 자신의 역할을 야구 심판에 비유했다. "판사는 심판과 같습니다. 심판은 규칙을 만들지 않습니다. 규칙을 적용할 뿐입니다." 그는 이어서 자신의 일은 "볼과 스트라이크를 판정하는 것이지, 투구하거나 타격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같은 발언에서 그는 "판사와 대법관은 법의 종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야구장에 심판을 보러 가는 사람은 없다"고도 했다. 사건은 기록에 따라, 법의 지배에 맞게, 두려움도 호의도 없이 판단하겠다는 다짐이었다. 후보자가 스스로에게 건 이 비유는 이후 20년 가까이 미국 판사의 역할을 설명하는 대표 문장으로 회자돼 왔다.

왜 하필 심판일까. 이 비유를 뜯어보면 미국이 판사라는 자리를 어떻게 설계했는지가 드러난다. 규칙을 만들지 않는다는 약속, 어느 팀의 편도 들지 않는다는 약속, 그리고 그 약속이 실제로 지켜지도록 만든 헌법의 장치들까지 — 차례로 살펴본다.

첫 번째 약속: 규칙은 만들지 않는다

야구에서 규칙은 리그가 정한다. 심판은 그 규칙을 들고 경기장에 들어와 눈앞의 투구에 적용할 뿐, 스트라이크 존을 자기 마음대로 넓히거나 좁힐 수 없다. 로버츠의 비유가 말하는 첫 번째 약속이 이것이다. 법을 만드는 일은 의회의 몫이고, 그 법을 집행하는 일은 행정부의 몫이다. 판사의 몫은 이미 만들어진 규칙 — 헌법과 법률 — 을 구체적인 사건에 적용하는 데서 시작하고 거기서 끝난다.

이 분업은 미국 건국 세대의 설계와 맞닿아 있다. 알렉산더 해밀턴은 1788년 연방주의자 논집 제78편에서 사법부를 세 부 가운데 '가장 위험하지 않은' 부라고 썼다. 행정부는 칼(군사력)을 쥐고 입법부는 지갑(재정)을 쥐지만, 사법부는 그 어느 것에도 영향력이 없으며 "힘도 의지도 아닌 판단만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판결을 강제할 군대도, 판결로 돈을 움직일 권한도 없는 부서 — 그래서 함부로 규칙을 만들 수도 만들 이유도 없는 자리라는 구상이다.

판사가 '선수'처럼 규칙 자체를 만들기 시작하면 경기는 성립하지 않는다. 선수는 규칙 안에서 이기려고 뛰는 사람이고, 규칙을 정하는 일까지 선수가 맡으면 상대 팀은 경기를 신뢰할 수 없게 된다. 비유가 겨냥하는 바는 명확하다. 판사의 권위는 규칙을 새로 쓰는 데서 나오지 않고, 주어진 규칙을 흔들림 없이 적용하는 데서 나온다.

두 번째 약속: 어느 팀의 편도 들지 않는다

심판의 두 번째 약속은 중립이다. 심판은 어느 팀이 이기기를 바라지 않는다. 같은 투구라면 아홉 회 말 역전 상황에서도, 연습 경기에서도 같은 판정이 나와야 한다. 로버츠가 "법의 종"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인은 법이고 판사는 그 법에 복무하는 사람이지, 자기가 원하는 결과를 먼저 정해 놓고 거기에 법을 끼워 맞추는 사람이 아니라는 선언이다.

재판으로 옮기면 중립은 이런 모습이다. 소송을 건 쪽이 정부든 대기업이든 개인이든, 판정은 누가 이겨야 '좋은 그림'인지가 아니라 기록과 법이 무엇을 말하는지로 정해진다. 로버츠의 표현대로 "두려움도 호의도 없이" — 권력의 눈치를 보는 것도, 약한 쪽을 향한 온정으로 규칙을 비틀어 주는 것도 심판의 일은 아니다.

이 약속이 중요한 이유는 재판의 패배자가 결과를 받아들이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진 쪽이 "심판이 상대 팀 편이었다"고 믿는 순간, 판결은 승복이 아니라 힘의 행사로 읽힌다. 심판 비유는 판사 개인의 성향과 무관하게 경기가 공정했다는 신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그래도 경기는 굴러가야 한다 — 심판의 실제 일

물론 심판은 가만히 서서 구경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실제 재판에서 판사가 하는 일은 경기 운영 전반에 걸쳐 있다. 절차가 규칙대로 흘러가도록 진행을 관리하고, 어떤 자료를 증거로 받아들일지를 가리며, 재판이 끝나면 적용될 법을 배심에게 설명한다.

연방법원의 배심 재판을 보면 이 분담이 또렷하다. 배심은 판사가 증거로 채택한 증언과 물증을 토대로 사실을 판단한다. 증거로 채택되지 못한 자료는 배심의 판단 재료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법이 무엇인지는 판사가 설명한다 — 연방법원 안내에 따르면 법에 관한 판사의 설명은 배심을 구속하지만, 사실이 무엇이었는지의 판단은 오롯이 배심의 몫이다. 심판이 규칙을 설명하고 선수는 그 안에서 뛰듯, 판사는 법의 틀을 제시하고 배심은 그 틀 안에서 사실의 승부를 가린다.

여기에 한 겹이 더 있다. 헌법은 대법원에 항소 관할을 규정한다. 한 심판의 판정이 규칙에 맞았는지를 상급 법원이 다시 살피는 구조, 즉 '심판을 보는 심판'이 제도 안에 들어 있다. 한 사람의 판정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공정성을 담보하는 장치다.

심판을 흔들 수 없게 만든 장치들

약속만으로는 부족하다. 미국 헌법은 심판이 실제로 흔들리지 않도록 자리 자체를 단단하게 설계했다. 첫 번째 장치는 뽑는 과정이다. 연방 판사는 대통령이 지명하고 상원의 조언과 동의를 거쳐 임명된다(헌법 제2조 제2항). 선거로 뽑지 않으니 다음 선거를 의식할 필요가 없고, 대신 임명 단계에서 공개 검증을 거친다. 2005년의 그 청문회가 바로 그 과정이었다.

두 번째 장치는 임기와 급여다. 헌법 제3조 제1항은 판사가 '품행이 선량한 동안(good Behaviour)' 직을 유지하고 재직 중 보수가 삭감되지 않는다고 정한다. 이 문구는 판사가 스스로 물러나거나 탄핵으로 파면되지 않는 한 종신 재직하는 것으로 해석돼 왔다. 의회도서관의 헌법 해설은 보수 삭감 금지 조항의 취지를, 마음에 들지 않는 판결을 낸 판사의 급여를 깎아 응징하는 일을 막는 데 있다고 설명한다. 인기가 없는 판결을 내려도 자리와 급여가 흔들리지 않으니, 눈치 볼 상대가 사라지는 셈이다.

세 번째 장치는 해임의 문턱이다. 연방 판사는 탄핵 절차를 통해서만 파면될 수 있고, 헌법 제2조 제4항은 반역죄, 뇌물죄, 그 밖의 중대 범죄와 비행으로 탄핵소추를 받아 유죄 판결이 나야 파면된다고 정한다. 뽑기는 어렵게, 내보내기는 더 어렵게 — 이 비대칭이 심판의 독립을 지키는 구조다.

비유가 닿지 않는 곳

다만 이 비유에는 오래된 반론이 따라붙는다. 첫째, 스트라이크 존의 문제다. 규칙을 '적용'한다고 해도 문구가 열려 있는 사건에서는 해석의 폭이 생긴다. 올버니 법학리뷰의 로버츠 분석은 결론에서 "어느 두 심판도 똑같은 스트라이크 존을 유지하지 않으며, 노련한 선수는 그날 홈플레이트 뒤에 선 심판의 성향을 안다"고 썼다. 같은 비유를 들어 비유의 한계를 짚은 것이다.

둘째, 미국 판사가 모두 로버츠 같은 자리는 아니라는 점이다. 연방 판사는 임명제지만 주 법원은 사정이 다르다. 브레넌 정의센터 집계에 따르면 39개 주가 어떤 형태로든 판사 선출에 선거를 활용한다. 주 대법원 판사를 선거로 뽑는 38개 주 가운데 16개 주는 주지사가 임명한 뒤 경쟁 상대 없는 신임 선거를, 14개 주는 무정당 경쟁 선거를, 8개 주는 정당 경쟁 선거를 치른다. 유권자의 심판을 받는 '심판'에게 연방 판사와 같은 비유를 그대로 대기는 어렵다.

셋째, 임명 과정 자체의 정치성이다. 연방 판사의 자리는 대통령 지명과 상원 동의라는 절차로 채워진다. 심판이 되기 전까지의 과정이 정치와 무관할 수 없다는 지적은, 비유가 설명하는 '경기 중의 판사'와 비유가 비껴가는 '판사가 되는 과정' 사이의 간극을 보여 준다.

한국의 법관은 어떤가

한국의 헌법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정한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헌법과 법률, 그리고 양심에 따라 판단한다는 선언이다. 신분 보장도 있다. 제106조 제1항은 법관이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않으며, 징계처분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정직·감봉 같은 불리한 처분을 받지 않는다고 정한다.

차이는 임기에서 드러난다. 미국 연방 판사가 종신 재직으로 해석되는 것과 달리, 한국 법관의 임기는 헌법 제105조에 대법원장 6년(중임 불가), 대법관 6년(연임 가능), 그 밖의 법관 10년(연임 가능)으로 정해져 있고 정년은 법률로 정한다. 임명 방식도 다르다. 대법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고,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제104조). 종신제 대신 임기와 연임 심사를, 그 대신 파면 요건의 엄격함으로 독립을 지키는 쪽에 무게를 둔 설계다.

미국 연방법원 판사와 한국 법관, 무엇이 같고 다른가

구분미국 연방법원 판사한국 법관
선임 방식대통령이 지명하고 상원의 조언과 동의를 거쳐 임명대법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과 국회의 동의를 거쳐 임명
임기품행이 선량한 동안 재직 — 종신 재직으로 해석대법원장 6년(중임 불가), 대법관 6년, 그 밖의 법관 10년(연임 가능)
파면 요건탄핵소추와 유죄 판결이 있을 때만 파면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가 없으면 파면 불가
독립 보장재직 중 보수 삭감 금지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제103조)

심판이라는 약속

로버츠의 비유는 판사라는 자리의 이상을 한 문장으로 압축한다. 규칙은 만들지 않고, 편은 들지 않으며, 경기의 주인공이 되려 하지 않는 사람. 그리고 미국 헌법은 그 이상이 개인의 다짐에만 기대지 않도록 임명 절차, 종신에 가까운 임기, 급여 보장, 어려운 파면이라는 장치를 겹겹이 쌓았다.

물론 비유는 비유일 뿐이다. 스트라이크 존은 심판마다 조금씩 다르고, 주 법원의 심판은 선거라는 또 다른 경기에 서며, 심판이 되는 과정은 정치의 한복판을 지난다. 그럼에도 이 비유가 20년 가까이 인용되는 이유는 단순하다. 판결에 진 쪽까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힘은 판결의 내용이 아니라, 판사가 끝내 '선수'가 아니었다는 신뢰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자주 묻는 질문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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