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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감정과 동떨어진 판결'이라는 말은 왜 반복될까
주목받는 재판의 결과가 나올 때마다 비슷한 말이 따라붙는다. '국민 감정과 동떨어진 판결'이라는 비판이다. 직업 판사 한 사람, 혹은 소수의 합의부가 내린 결론이 사회 대다수의 상식과 어긋난다고 느낄 때 나오는 말이다.
미국 배심제는 바로 이 간극을 겨냥해 설계된 제도다. 유무죄를 정하는 사람을 직업 법관에서 일반 시민 12인으로 교체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연방대법원이 말한 배심재판의 목적은 '정부의 억압을 막는 것'이었고, 배심원단은 '지역사회의 공정한 단면'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 판례의 원칙이다. 1편에서 본 800년의 역사가 만든 이 장치가, 실제로는 어떤 방식으로 간극을 줄이고 어디에서 실패하는지를 살펴본다.
장치 ① 판단자를 바꾸다 — 시민 12인의 '단면'
배심제의 첫 번째 장치는 판단 주체의 교체다. 판사는 법을 설명하고 절차를 진행하지만, 사실 판단과 유무죄의 결론은 지역사회에서 소집된 시민 12인이 내린다. 법조 경력도, 승진도, 인사 평가도 없는 사람들이다. 판결에 대한 직업적 이해관계가 없다는 점이 이 설계의 핵심이다.
두 번째 요소는 '단면'이다. 배심원단은 지역사회를 대표하는 단면을 이뤄야 한다는 원칙이 판례로 확립돼 있다. 특정 집단이 구조적으로 배제된 배심은 이 원칙에 어긋난다. 판단이 한 직업군의 시각에 갇히지 않도록, 판단하는 집단 자체를 사회의 축소판으로 만들려는 시도다. 물론 1편에서 봤듯 이 단면이 실제로 완성되기까지는 인종과 성별의 장벽을 허무는 200년의 소송이 필요했다.
장치 ② 만장일치 — 한 사람의 반대도 설득해야 한다
두 번째 장치는 만장일치다. 연방 형사재판에서 유죄는 12명 전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다수결이었다면 소수 의견은 무시하고 끝낼 수 있지만, 만장일치 구조에서는 단 한 명의 반대자도 설득하거나, 최소한 그 반대를 끝까지 들어야 한다. 극단으로 기울기 쉬운 결론이 집단 안에서 한 번 더 걸러지는 셈이다.
다만 만장일치가 깊은 숙의를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관찰도 있다. Kalven & Zeisel 연구를 정리한 후속 연구(Visher, 1987)에 따르면, 배심 평의는 대체로 초기에 잠정 결론에 이르는 경향이 있었고 처음 표결에서 다수였던 의견이 최종 평결까지 유지되는 경우가 많았다. 만장일치는 '전원이 동의한 결론'이라는 정당성을 만들지만, 그 과정이 언제나 치열한 토론인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장치 ③ 배심원 무효화 — 법이 있어도 시민이 거부하는 안전밸브
세 번째 장치는 가장 급진적이다. 배심원 무효화(jury nullification)는 증거상 유죄가 성립하더라도, 법 자체나 그 적용이 부당하다고 판단하면 배심이 무죄를 평결하는 것을 말한다. 무죄 평결은 번복할 수 없고 배심원은 평결을 이유로 처벌받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구조다. 그 토대는 1670년 런던의 부셸 사건에서 만들어졌다. 윌리엄 펜에게 무죄를 준 배심원들이 판사의 지시를 어겼다는 이유로 투옥됐지만, 상급법원이 이들을 풀어 주며 '배심원은 평결로 처벌받지 않는다'는 원칙이 섰다.
1735년 젱어 재판이 그 원형이다. '진실은 명예훼손의 항변이 되지 못한다'는 판사의 지시에도 배심은 무죄를 택했다. 이후에도 배심이 법 집행 자체를 거부한 사례가 무효화의 전통으로 인용된다. 19세기 초 외국인·치안법, 19세기 중반 도망노예법, 20세기 초 금주법에 대한 배심들의 집행 거부가 대표적이다(배심원 무효화를 옹호하는 Cato Institute 해설의 정리).
그러나 이 장치는 양날의 검이라는 지적도 함께 받는다. 무효화는 공식 권리가 아니다. 연방대법원은 1895년 Sparf 판결에서 재판부가 배심에게 무효화 권한을 고지할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다. 즉 배심은 사실상 행사할 수 있지만 제도가 안내하지는 않는 권한이다. 법치의 예외를 시민의 양심에 맡기는 구조가 정의의 안전밸브인지, 자의적 판단의 통로인지는 지금까지도 논쟁이 이어진다.
판사 혼자였다면 달랐을까 — 70년 연구의 답
배심이 판사보다 감정적일 것이라는 통념은 실증 연구와는 거리가 있다. 배심 연구의 고전인 Kalven & Zeisel의 시카고 프로젝트는 전미 약 8,000건의 민·형사 사건에서 담당 판사에게 '배심 없이 재판했다면 어떻게 판결했겠는가'를 물어 실제 평결과 대조했다. 형사 사건 3,576건 중 판사와 배심의 결론이 일치한 비율은 78%, 개인상해 민사 사건에서는 79%였다. 판사들이 배심의 평결을 증거와 법에 비추어 불합리하다고 본 경우도 드물었다.
갈라진 22% 안을 들여다보면 그림은 더 구체적이 된다. 불일치의 주된 이유는 감정이 아니라 증거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의 차이였다. 피고인이나 피해자의 특성이 평결에 영향을 준 경우는 증거가 약한 사건에 한정됐고, '피고인에 대한 감정'이 불일치에 개입한 것으로 분석된 비율은 약 22%였다. 배심이 판사와 다른 결론에 이르는 일이 주로 '증거가 애매한 사건'에서, 그리고 대체로 무죄 방향으로 발생한다는 것이 연구의 관찰이다. 차이는 배상액에서 더 컸다. 책임이 인정될 때 배심이 정한 배상액은 판사의 예상보다 평균 20% 높았다.
한계 ① 구성의 편향 — 누가 앉는가가 결과를 바꾼다
배심제가 감정을 줄이는 장치라는 설명에는 조건이 붙는다. 배심이 실제로 지역사회의 단면을 이룰 때만 그렇다. 구성 자체가 한쪽으로 기울면, 그 기울기가 평결에 그대로 실린다는 연구가 있다.
플로리다주 중범죄 재판(2000~2010년)을 분석한 Anwar·Bayer·Hjalmarsson 연구(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2012)가 대표적이다. 전부 백인인 배심원 후보 풀에서 구성된 배심은 흑인 피고를 백인 피고보다 16%포인트 더 자주 유죄로 평결했다. 그런데 후보 풀에 흑인이 단 한 명이라도 포함되면 이 격차는 사라졌다. 연구가 시사하는 것은 두 가지다. 배심의 다양성은 장식이 아니라 결과에 영향을 주는 변수이며, 역으로 구성이 편향되면 배심은 시민 감각의 반영이 아니라 편향의 증폭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계 ② 전문가들의 비판 — 변덕, 무지, 그리고 배상 편차
배심에 대한 회의론은 제도만큼 오래됐다. 하버드 로스쿨 학장을 지낸 어윈 그리스월드는 '길에서 데려온 12명이 분쟁을 판단할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왜 생각해야 하는가'라고 물었고, 판사 제롬 프랭크는 배심을 '변덕스럽고 무지하고 편견에 차 있으며 사실을 잘 판단하지 못한다'고 혹평했다. 법률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복잡한 증거와 법리를 다루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지적이다.
실증 연구가 부분적으로 뒷받침하는 비판도 있다. 배상액의 일관성 문제다. 비슷한 손해를 입은 사건 사이에서도 배상액이 크게 벌어지는 '수평적 불형평'이 관찰됐고, 소액 손해는 과대하게, 고액 손해는 과소하게 배상되는 경향, 피고의 유형이나 도시·농촌 여부 같은 무관한 요소가 금액에 개입하는 경향이 보고됐다. 유무죄 판단의 일치율과 달리, '얼마인가'의 판단에서는 배심의 편차가 크다는 것이다. 반대로 옹호 측에서는, 전문가 비판의 상당 부분이 체계적인 실증 증거가 아니라 일화와 주장에 기대 왔다는 점을 지적한다. Kalven & Zeisel 이후의 실측 데이터가 비판의 통념을 그대로 뒷받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의 답안 — 국민참여재판은 '권고'인데 왜 무겁나
한국은 이 장치를 변형해서 들여왔다. 2008년 1월 1일 시행된 국민참여재판이다. 미국과 다른 점이 뚜렷하다. 대상 사건이라도 피고인이 원하는 경우에만 열리고, 배심 평결은 법원을 기속하지 않는 '권고적 효력'만 가진다. 평의 방식도 원칙은 만장일치이되, 이르지 못하면 법관의 의견을 들은 뒤 다수결로 정할 수 있다.
그런데 대법원은 이 권고에 상당한 무게를 실어 왔다. 판례는 국민참여재판의 취지를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과 신뢰를 높이기 위한 것'으로 설명하고, 배심의 만장일치 무죄 평결을 받아들인 1심 무죄판결은 명백히 반대되는 현저한 사정이 없는 한 항소심이 함부로 뒤집어서는 안 된다고 정리했다. 통계로도 권고의 무게가 드러난다. 2019년 통계를 분석한 학술 연구에 따르면 배심이 유죄로 평결한 123건 중 재판부가 유무죄를 배심 평결과 같이 판단한 사건은 120건, 존중률 97%였다. 기속력은 없지만 사실상 판결의 방향을 정하는 구조인 셈이다.
설계의 차이는 두 제도가 간극을 줄이는 방식의 차이를 보여준다. 미국은 판단 주체 자체를 시민으로 바꿔 기속력을 주고, 한국은 직업 법관의 판단을 유지하되 시민의 의견을 강한 권고로 붙여 둔다. 어느 쪽이든 전제는 같다. 판결에 대한 신뢰는 판단 과정에 시민이 들어와 있을 때 높아진다는 것이다.
자주 묻는 질문
출처
간극을 없애는 제도가 아니라, 줄이는 장치
정리하면 배심제는 판결의 간극을 세 방향에서 줄인다. 판단 주체를 시민 12인으로 바꿔 직업 법관의 고정된 시각에서 벗어나고, 만장일치로 극단적인 결론을 한 번 걸러내며, 배심원 무효화로 법 적용이 상식과 충돌할 때의 비상구를 남겨 둔다. 실증 연구는 이 장치가 통념보다 차분하게 작동한다는 쪽에 서 있다. 판사와 배심은 대부분의 사건에서 같은 결론에 도달했고, 갈릴 때도 이유는 대개 증거 해석이었다.
동시에 한계도 연구로 확인된다. 배심의 구성이 기울면 편향이 실리고, 배상액의 편차는 크며, 만장일치가 깊은 숙의를 보장하지도 않는다. 배심제는 간극을 없애는 제도가 아니라 줄이는 장치이고, 그 성능은 '누가 배심석에 앉는가'라는 구성의 문제에 달려 있다. 한국이 국민참여재판에서 기속력 없는 권고를 택하면서도 대법원이 그 무게를 판례로 보장해 온 것도, 결국 판결의 신뢰는 판단에 참여하는 시민의 폭에서 나온다는 같은 전제 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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