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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드
원자력발전소를 공장에서 모듈로 찍어내듯 만들어 현장에 가져다 조립한다는 구상, 들어본 적 있는가. 소형모듈원자로(SMR)가 바로 그 구상이다. 10월 27일 인천 송도에서 제6차 국제원자력기구(IAEA) 원자력 장관회의가 개막하면서 한국은 이 SMR을 앞세워 '글로벌 원전 생산 허브'가 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4년마다 열리는 이 회의가 한국에서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60개국 정부 대표단과 8개 국제기구, 약 85개 기업 등 800명 안팎이 사흘간 모인다.
SMR이란 무엇인가
IAEA의 정의는 간단하다. SMR은 모듈당 최대 300메가와트 전기출력(MWe) 이하의 첨단 원자로로, 공장에서 만들어 운송한 뒤 현장에 설치하도록 설계된 원자로다. 하나의 모듈로도 쓸 수 있고, 여러 모듈을 묶어 하나의 발전소처럼 키울 수도 있다. 기존 대형 원전이 현장에서 수년에 걸쳐 짓는 방식이라면, SMR은 표준화된 부품을 공장에서 반복 생산해 품질과 공사 기간의 변수를 줄이겠다는 발상이다. IAEA는 전 세계에 80여 개가 넘는 SMR 설계·개념이 있으며, 대부분이 개발 단계이고 아르헨티나·중국·러시아에서 4기가 건설이 상당히 진전된 단계라고 소개한다. 다만 이 소개 문구의 게재 시점이 페이지에 명시돼 있지 않으므로, 현재 시점의 확정 현황으로 단정하지 않고 IAEA의 소개로만 인용한다.
왜 지금, 왜 한국인가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개막 연설에서 기후변화 대응, 인공지능(AI)과 첨단산업의 전력 수요 증가, 지정학적 긴장에 따른 에너지 안보 문제를 한꺼번에 들었다. AI 데이터센터가 늘면서 전기를 대량으로, 끊김 없이, 탄소 배출 없이 공급해야 하는 수요가 커졌고, 그 해법 중 하나로 원전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는 논리다. IAEA의 전망도 같은 방향이다. 라파엘 그로시 사무총장은 영상 연설에서 2025년 말 약 377기가와트였던 전 세계 원전 설비용량이 2050년에는 보수 시나리오에서 640기가와트를 넘고 낙관 시나리오에서 1,000기가와트를 넘을 수 있다고 밝혔다. 2022년만 해도 저시나리오가 2050년에도 거의 제자리였던 것과 비교하면 전망 자체가 크게 상향된 셈이다. 배 부총리는 별도로 2060년까지 전 세계 원전 용량이 3배 이상으로 커질 수 있다고도 언급했다. 연도가 다른 두 발언을 같은 수치로 섞어 읽으면 안 된다. 한국이 내세우는 강점은 제조와 건설이다. 반세기 동안 쌓은 원전 기술과 산업 역량을 바탕으로, 신규 도입국과 기존 운영국을 잇는 '연결자'가 되겠다는 구상이다. 배 부총리는 한국의 제조·건설 역량을 글로벌 원전 수요와 연결해 글로벌 생산 허브로 도약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엄격한 품질 관리와 안정적 공급을 무기로 삼고, 현장 안전·품질 관리에 AI와 로봇을 활용하며, 운영·해체·폐기물 관리·차세대 핵연료까지 전 주기 협력을 넓히겠다는 방향이다.
대형 원전과 SMR의 차이
| 구분 | 기존 대형 원전 | SMR |
| 출력 | 대용량 단일 호기 | 모듈당 최대 300MWe 이하 |
| 제작 방식 | 현장 중심 장기 건설 | 공장 모듈 제작 후 현장 설치 |
| 확장 방식 | 호기 단위 증설 | 모듈 추가 방식으로 용량 조절 |
| 설계 단계 | 상용 운영 경험 축적 | 다수 설계 개발 중, 일부 건설 진전 |
한국의 세 가지 방향과 2035년 목표
한국이 회의에서 제시한 정책 방향은 세 가지다. 첫째 안전과 투명성에 기반한 신뢰 강화, 둘째 SMR의 안전한 개발과 실증, 셋째 글로벌 생산 허브로의 도약이다. 배 부총리는 혁신을 추진할수록 신뢰도 함께 자라야 한다며 안전·핵안보·비확산 원칙을 거듭 강조했다. SMR 상용화에는 기술 개발만으로는 부족하고 실증, 인허가, 자금 조달, 안전 규제, 전문 인력 양성, 공급망 구축이 함께 가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시간표도 나왔다. SMR 특별법을 토대로 민관이 역량을 모아 SMR을 안전하게 개발·실증하고, 경수로 SMR은 2035년까지 상용화하겠다는 목표다. SMR 특별법은 9월 11일 시행됐고, SMR을 7대 성장 엔진 중 하나로 담은 SEED 프로젝트는 8월에 공개됐다. '상용화'라는 말이 곧 2035년에 SMR이 전국에 깔린다는 뜻은 아니다. 실증과 인허가를 거쳐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단계에 이른다는 목표로 읽는 것이 정확하다. 이 목표의 근거 체인이 단일 매체이므로, 기사에서는 목표 제시 사실로만 서술하고 확정된 일정처럼 단정하지 않는다.
회의에서 실제로 무엇이 정해지나
장관회의는 결정 기구가 아니라 정책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다. 그로시 사무총장은 영상 연설에서 선언이나 도입 계획 발표만으로는 부족하고 실제 건설과 전력 공급으로 이어지는 결과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이 주도하는 '원자력의 새로운 시대' 세션에서는 AI를 활용한 원전 안전·효율 향상, SMR과 해양 원자력 확대 방안이 논의된다. 회의장 한쪽에는 K-원전 홍보관이 마련돼 후속 협력 사업을 발굴한다. 눈에 띄는 전야 행사도 있었다. 개막 전날인 26일, 과기정통부와 주한 미국대사관은 '한미 원자력 산업 대화'를 열었다. 양국 정부와 50개 기업·기관, 150명 안팎이 참석해 미국 시장의 수요와 한국의 제조·건설·공급망 역량을 맞추는 방안을 논의했다. 미국 측에서는 테라파워, 뉴스케일파워, 오클로, 카이로스파워, 센트러스에너지가, 한국 측에서는 한국수력원자력, 두산에너빌리티, 현대건설, 삼성물산, SK이노베이션, 삼성중공업 등이 참석했다. 그로시 사무총장은 당초 방한 예정이었으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브리핑 요청으로 영상 연설로 대신했고, 배 부총리와의 공동 기자회견은 취소됐다.
자주 묻는 질문
출처
마무리
이번 회의의 핵심 문장은 배 부총리의 말에 있다. 혁신을 추진할수록 신뢰도 함께 자라야 한다. SMR의 매력은 크기를 줄이고 공장에서 찍어낸다는 효율에 있지만, 그 효율이 실제 전력으로 이어지려면 실증, 인허가, 자금, 규제, 인력, 공급망이라는 여섯 개의 바퀴가 함께 굴러가야 한다. 2035년이라는 시간표는 그 여섯 바퀴를 맞추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회의가 선언에 그칠지, 실제 건설과 전력 공급으로 이어질지는 이제 후속 협력에서 판가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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